이점미 교수의 ‘그 시대 헤어스타일’ 3번째 이야기

▲ ▲ 이점미 교수_서울직업전문학교
1980년대는 암울과 희망이 교차하던 시대였다.

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로 사회 전반에 걸쳐 혼란한 상황에서 12,12 사태 (군부반란 사건)로 정권을 탈취한 전두환 노태우 전 직 대통령들이 1980년판 무신정변을 일으켜 사회 개혁이란 미명하에 온 나라 학생 정치가등 반대편에선 모든 사람들을 다 감옥에 집어넣고, 1980년 5월 18일 조용하던 광주에서는 군인들의 강압진압작전에 많은 광주학생과 시민들이 희생된 광주 민중 항쟁이 발생했었다.

이러한 우울한 배경으로 시작된 1980년대는 민주주의를 갈망하던 젊은 대학생들의 시위가 많았고, 따라서 대모가라고 불리는 노래들도 많았다. 그 노래로는 “임을 위한 행진곡”, “아침이슬”, “고래사냥”등이 있었고, 그 외에도 금지곡이 된 노래로는 “그대 그 사람”, “그건 너”, “불 꺼진 창” 등 80년대에는 다양한 이유로 금지되어진 노래들이다.

하지만 8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이러한 암울한 분위기는 희망이라는 컬러를 입었다. 1988년 세계적으로 대한민국을 널리 알릴 수 있었던 것은 88서울 올림픽을 치루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알리게 되고, 경제적으로도 크게 발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컬러TV 등장과 함께 메이크업 전성시대 열리다’

1980년 초반까지는 70년대의 트로이카로 불리던 유지인, 정윤희, 장미희 등 여배우들이 활약이 계속되었고, 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하이틴 스타라고 하는 이상아, 하희라, 김혜수, 채시라등이 두각을 나타냈고, 컴퓨터 미인이라고 불리던 황신혜와 영화배우로는 강수연이 80년대 중후반의 많은 활동을 통해서 큰 인기를 끈 배우였다.

1980년대는 컬러 TV의 보급으로 인해 70년대의 헤어나 메이크업의 스타일과 판이하게 달라진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메이크업에서 보면 색조화장이 많이 부각되고, 21세기인 현재보다도 더 과감한 메이크업을 볼 수 있다. 
          

▲ 1980년대 화장품 모델로 활동하던 황신혜 모습

‘동양미인에서 서구적 미인으로 여배우 교체’

80년대 이전만 해도 미인이라고 하는 배우들의 얼굴은 동그란 형의 동형적인 이미지가 강했다면 황신혜는 계란형에 혼혈로 봐도 믿을 만큼 서구적인 미인 이였고, 컴퓨터가 보편화되는 시점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해 컴퓨터로 분석한 최고의 비율을 자랑하는 미인이라 해서 컴퓨터 미인이라고 자연스럽게 불리게 되었다.

'이단헤어 스타일이 주류, 염색시장 활성화'

1980년대 헤어스타일을 보면 세팅기로 말은 자연스러운 웨이브에 볼륨이 풍성한 스타일이 주를 이루고 앞머리에 포인트를 준 이단 볼륨으로 모양을 낸 스타일을 많이 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앞머리 볼륨의 높이에 따라 자존심이라고 생각해서 볼륨의 높이를 최대한 높게 세우려고 했다.

        

▲ 사진설명: 왼쪽부터 광고 속 김희애, 초콜릿 광고 속 채시라

염색시장의 활성화가 된 시기가 80년대부터이다. 컬러 TV의 보급을 통해 TV속의 배우들의 헤어 컬러나 메이크업 등이 큰 인기를 끌었고, 그로인해 미용시장이 활성화가 되었다.

그동안 국내제품으로 일관된 염색약시장이 외국 브랜드 염색회사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컬러도 다양해지고, 염색약에서 나는 암모니아 냄새도 덜 나고, 모발도 윤기가 많아 고객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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